창고/골방

왜 한국에는 전문가다운 전문가가 없을까?

오박 2010. 1. 15. 17:43
원문 출처 : http://www.jpnews.kr/serial_read.html?uid=327&section=sc2

덧글에 공감하여 불펌..(문제되면 삭제하겠습니다)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아니겠습니까? kori2sal 09/05/25 [11:00] /ip:60.32.78.*



 한국에서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사업주의 변심에 의한 사업부 정리, 회사의 도산, 팀 해체, 정치적인 밀려남은 너무나도 필연적인 일이 아니던가요? 15년 가까운 직장생활을 하면서 저 역시 2년 이상 근무해본 회사가 극히 적지만 그것은 나 자신의 의사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요.

이봉우 사장에게는 일본 사회를 기준으로 해서 그렇게 너무 굴러다니는 것이 전문성 부족의 원인인 것처럼 생각이 되었겠지만, 굴러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분명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있습니다. 다만 전문가가 전문성에 의해서 판가름 되는 것이 아닌, 단순한 간판에 의한 줄세우기에 의해서 판가름되고 대중도 그걸 아무 여과 없이 믿는 것이 문제인 것 아닌가 싶네요. 결과적으로 노출되는 것은 그런 사이비 전문가들이 대다수 아니겠습니까?

한 7년전쯤 어떤 분이 조선일보의 전문성에 대해서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대로 옮겨보자면 이렇죠.

"조선일보는 기자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처음 기자가 들어오면 하나의 잡무를 맡겨 몇 년 동안 그것에만 매달리게 한답니다. TV 방송 편성표만 2년 동안 만드는 기자도 있다고 하죠. 그렇게 하나만 죽어라 시키는데 전문가가 안 되겠어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기자는 TV방송 편성표를 만드는데는 전문가가 되었겠지만 편성표를 구성하는 내용과 그것이 의미하는 방송 문화의 변화에는 2년이 지나도 여전히 문외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지식 수준은 그가 취한 정보의 양에 의해 판가름 됩니다. 100이라는 정보를 취한 사람보다는 동일 분야의 정보 150을 취한 사람의 지식 수준이 더 높을 겁니다. 전문성은 경험에 의해서 훨씬 빠르게 축적됩니다. 전문성이란 대체로 투자한 시간에 비례해서 성장합니다. 인간에게 있어 체험(직접경험)에 의해 축적한 지식과 간접경험에 의해 축적한 지식의 밀도는 굉장한 차이가 있습니다. 전쟁에 관련된 전문 서적을 수만 권 읽는 것보다는 전쟁을 직접 겪어 보는 게 전쟁에 대한 보다 확고하고 전문적인 지식을 손에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전문가'와 '비전문가'는 지식의 축적 여부, 혹은 경험의 양을 가늠하는 구분법이 아닙니다. 기본적인 지식의 축적이 전제되었을 때의 이야기겠지만요.

지금은 그쪽 업계를 떠났습니다만, 과거 IT 관련 잡지에서 일하면서 제법 많은 수의 신문 기자들을 만나보았습니다. 일간지 기자들은 크게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공채를 통해 해당 일간지에 처음 입사해 계속 그 세계에서만 살아온 사람, 또 하나는 다른 주변 매체에서 일하다가 일간지 기자로 스카웃 되어 들어간 사람입니다. 사실 후자는 그렇게 문제가 없는 편입니다. 문제가 있는 건 항상 전자 쪽이죠. 그리고 전자의 경우 몇 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 공통점을 딱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superiority complex' 즉 '우월감'입니다.

그런데 이 우월감에도 사실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명감에서 오는 우월감이 있을 것이며 또 하나로는 타인의 위에 올라서 있다는 자만심에서 오는 우월감이 있을 것입니다. 본래 우월감은 객관성을 내포하지 않는 개념이지만 우월감을 지닌 사람은 스스로 객관성을 부여하려 합니다. 그래서 전자는 자신보다 열등한 사람들을 이끌어 간다는 일종의 사회적 리더로서의 사명감을 갖는 것이고 후자는 열등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어느 쪽이건 기분 나쁘겠지만 사실 전자의 경우 사명감, 사회적 권력자로서의 우월감은 비교적 바람직한 사고입니다. 그들에게 우월감을 심어주는 객관적인 장치가 바로 학력과 자격, 일하고 있는 회사의 사회적 지위 같은 것들이기에 그들은 자신보다 열등한 다수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의 신문 기자들은 대게 후자의 경우가 많았습니다.

일전에 일본에서 15년 동안 대학 교수로 재직해 오신 분의 수기를 보니 그런 점이 아주 자세히 쓰여져 있더군요. 교수님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일본이나 미국 기자랑 만나서 저녁을 먹으면 주로 한국과의 관계나 사회적 문제에 대한 토론을 하게 되지만 한국 기자와 저녁을 먹으면 골프와 술집 이야기밖에 안 한다라는 식이죠.

전문성이 생기지 않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그 원점에는 앞서 말한 우월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영화 관계자에게도 그것이 과연 없는가 하면, 글쎄요? 이것이 심하지 않으면 자존심이나 자부심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그게 심해지면 자존심과는 매우 성질이 다른 우월감일 뿐입니다. 정녕 그것이 자존심이라면 자신보다 권위 있는 대상 앞에서도 굽히지 말아야죠.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는 순응하고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굽히지 않는 건 단순한 우월의식일 뿐입니다. 왜 우월감이 전문성의 성장을 방해하느냐면 이 우월감 때문에 배우려는 자세가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렇기에 자신이 맡은 분야를 밑바닥부터 새롭게 공부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주변의 상황을 짜집기 해서 그럴듯한 펙트만 추려내는 요령을 먼저 배우게 됩니다. 적어도 제가 IT 미디어 쪽에서 겪어 본 바로는 그랬습니다.

유재순 님의 글이 잘못 되었다는 건 아니고요. 저도 상당 부분은 공감하는 면이 있습니다. 다만, 조금 일본 상황에서 바라보는 면이 없지 않는가 하는 점입니다.

한 곳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아 정말 코마카이한 부분의 전문가가 된다는 건 다분히 일본식 시스템에서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것을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건 보다 넓게 파악하고 그것을 정리하면서 플랜을 세울 수 있는, 그러면서도 상식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전문가가 아니던가요?


노 대통령 분향소 설치 기사 보러 왔다가 우연히 장문의 덧글을 남기고 말았네요.